정기상여금 지급 조건으로 붙은 재직자 요건이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상여금 지급에 재직자 요건을 붙은 경우 '고정성'이 없으므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 법리가 확립된 이래, 많은 사업장에서 상여금 지급 조건에 재직 요건을 두고 있는 상황인 만큼 파장이 예상된다.
이 사건 원고인 근로자를 대리한 김기덕 새날 법률사무소 변호사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 제38부(재판장 박영재)는 지난 12월 18일, 주식회사 세아베스틸 소속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청구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해 근로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2017나2025282).
근로자들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데도 회사 측이 이를 포함하지 않고 퇴직금이나 각종 수당을 산정해 지급했다면서 임금을 다시 산정해 지급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회사는 "정기상여금 지급조건에 '지급일 당시 재직자에게만 지급하고 지급일 이전 퇴직자에게는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재직요건)이 붙어있다"며 "따라서 고정성을 결여해 통상임금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최근 통상임금을 둘러싼 판례 경향에 따르면 '재직 조건'은 통상임금의 고정성을 부정하는 요소다. 최근 통상임금 소송에서 종종 발생하는 공방 논리로, 1심인 서울서부지방법원도 대법원의 견해에 따라 고정성을 부정하고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서울고등법원 "근로제공 대가인데 재직하지 않았다고 지급 않는 것은 무효"
그런데 이번 서울고등법원에서 다소 이례적인 판단이 나온 셈이다.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에 부가된 재직자 조건은 무효"라고 판단해서 눈길을 끌었다. 고정성 판단을 달리 한 것이 아니라, 재직자 요건 자체가 잘못됐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먼저 "정기상여금은 임금의 대가이므로, 지급기간이 수개월 단위라도 이는 근로대가를 후불하는 것"이라며 "따라서 퇴직 근로자라고 해도, 퇴직 전에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정기상여금은 당연히 근로의 대가"라고 판단했다.
또 임금 지급에 조건이 부가될 수는 있지만, 재직자 조건은 성과급상 성과조건과는 다르다고 봤다.
재판부는 "성과급 성과조건은 성과급이라는 급여를 발생시키는 조건이지만, 정기상여금 재직자 조건은 '지급'을 결정하는 조건"이라며 "성과조건은 약정의 본래 내용이지만, '지급' 조건은 내용이 아닌 외부적 조건에 불과하다"라고 판시했다. 이어 "재직자 조건은 이미 발생한 임금을 실제 지급일에 재직했느냐에 따라 지급여부를 결정하는 조건으로 '지급'에 관한 조건"이라며 "이미 발생한 임금인 정기상여금을 결과적으로 지급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재판부는 "정기상여금에 일방적으로 재직자 조건을 붙이는 것은 이미 발생한 임금을 일방적으로 지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며 "이미 제공한 근로에 상응하는 부분을 사전에 포기하게 하는 내용으로 무효"라고 판단해 재직자 조건의 효력을 부정했다.
오세웅 법무법인 세종 노동전문위원(법학박사/ 노무사)은 "과거 재직자 요건이 붙은 정기상여금에 대해 통상임금성을 인정한 일부 하급심 판결도 있었다"라며 "이 판결들도 재직자 요건 자체는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면서 재직자 요건이 통상임금의 요건인 고정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하나의 요소에 불과한 것으로 그 의미를 축소해서 통상임금성을 판단했는데, 이번 서울고법 판결은 재직자 요건 자체가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정적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은 기본급과 같다"---정기상여금 미지급은 근로계속 강요
서울고등법원은 기존 정기상여금에 대한 논의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여러 가지 내놨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경우 정기상여금의 비중이 매우 높고, 월단위 정기상여금과 기본급을 비교하면 기본급의 80%에 이르는 점을 볼 때, 정기상여금은 근로자의 생활유지라는 점에서 기본급과 다를 수 없다"라며 "상여라는 명칭이 사용되지만, 본래 의미 보다는 기본적이고 확정적인 대가로 수령을 기대하는 임금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어 "그렇다면 재직자조건의 유효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기본급과 정기상여금을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라며 "적어도 고정급 형태 정기상여금에는 재직자조건을 붙여 지급하지 않는 것은 유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라고 판시했다.
정기상여금은 계속 근로를 장려하기 위한 추가 수당이라는 주장도 반박했다.
법원은 "장기근속 하지 않은 근로자에게 근속 장려금을 주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상 지급되어야 할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일종의 제재적인 수단을 통해 계속 근로를 확보하는 것"이라며 "계속 근로를 확보하기 위해 자유의사에 어긋나는 근로를 강요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7조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회사 측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키는 것은 기존 노사합의를 부정하는 것으로 신의칙에 위배된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마저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상여금 지급기준은 급여규정에 따른다는 노사의 약정만으로 통상임금 범위에 관한 합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라며 "또 그런 실무가 계속돼 관행으로 정착됐다고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오세웅 박사는 "지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대법원 2013.12.18. 선고 2012다89399)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던 재직자 요건에 대한 학계의 비판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